CITES 증명서 붙인 인도네시아산 침향 15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CITES 증명서를 붙인 인도네시아산 침향 15점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침향나무는 한 점도 없었고 대부분 하품으로 취급되는 라민 나무였습니다.

침향을 고를 때 우리는 무엇을 믿을까요?
원산지, 나무의 학명, 그리고 국제 거래가 허가되었다는 증명서입니다. 서류가 갖춰져 있으면 왠지 안심이 됩니다.
침향나무는 멸종위급종이라 국제 거래에 CITES(멸종위기종 국제거래협약) 증명서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적힌 학명은 '이 나무가 무엇인지'를 보증하는 이름표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2011년, 국내 연구진이 이 믿음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서류에 적힌 이름과 실제 나무는 정말 같을까?
이름은 같은데, 규격집이 말하는 침향과 인도네시아산 침향은 정말 같은 나무일까?
한약재의 기준이 되는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은 침향을 '아갈로차(Aquilaria agallocha)라는 침향나무의 줄기에 수지가 쌓인 부분'으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산 침향에는 말라센시스(Aquilaria malaccensis)라는 다른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1994년 인도가 침향나무를 국제 거래 규제 목록에 올리자고 제안하면서 두 나무가 같은 종이라고 했고, 한국은 이를 근거로 인도네시아산 말라센시스의 수입을 허가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침향을 생산하는 나라들과 전문가들은 대부분 두 나무를 다른 종으로 봅니다.
· 인도네시아: 아갈로차는 우리나라에 없다.
· 말레이시아: 두 종은 다르며, 아갈로차는 상급, 말라센시스는 중급이다.
· 중국: 아갈로차가 정품이고, 말라센시스는 다른 종이자 저급품이다.
국제기구인 CITES 안에서도 두 나무가 같은 종인지를 두고 2002년부터 논란이 이어져 왔습니다.
CITES 증명서와 관능검사만으로는 왜 진짜 침향을 가려낼 수 없었을까?
더 큰 문제는 증명서에 적히는 이름 자체였습니다. 인도네시아는 1995년부터 자국의 침향나무를 모두 '말라센시스'라는 한 이름으로 표기했고 1998년 이후에도 여러 종을 이 이름 아래 묶었습니다. 게다가 현지에서는 침향나무 무리가 아닌 다른 나무들까지 침향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증명서의 이름이 실제 나무와 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아 판정하는 관능검사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수입 시 부적합 판정은 2002년 단 한 건뿐이었고 2009년 11월부터 재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2010년 4월 재검사 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수입자들은 관능검사가 주관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00년 식약청(현재의 식약처) 연구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산은 베트남산과 성분 구성이 다르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나무인지까지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했습니다.
연구진은 나무의 속살에서 무엇을 보고 침향나무를 가려냈을까?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의 김인락 교수와 국립산림과학원의 박병수 박사, 두 연구자는 나무의 세포 구조를 직접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연구진은 말라센시스(malaccensis)라는 CITES 증명서를 붙여 수입·판매된 제품과 식약청 재검사에서 불합격한 제품 등을 모았습니다. 비교를 위해 인도네시아 현지의 진짜 말라센시스와 국립산림과학원의 침향나무 표본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각설탕보다 작게 잘라 부드럽게 만든 뒤, 종잇장보다 훨씬 얇게 저며 염색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했습니다.
판별의 열쇠는 '재내사부(included phloem)'였습니다. 나무는 잎에서 만든 양분을 체관이라는 통로로 나르는데, 보통 나무는 체관이 껍질 쪽에만 있습니다. 그런데 침향나무 무리는 목재 안쪽에도 체관 조직이 섬처럼 박혀 있습니다. 이것이 재내사부입니다.
이 재내사부가 상처를 입고 곰팡이나 곤충의 공격을 받으면 수지를 만드는 조직이 생기고, 그 수지가 쌓인 것이 바로 침향입니다. 침향이 만들어지는 자리 자체가 침향나무의 표식인 셈입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인도네시아 수입 침향 15점은 과연 어떤 나무였을까?
비교용으로 준비한 말라센시스에서는 재내사부가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진짜 침향나무 무리임이 확인된 것입니다.
그러나 조사한 15점에서는 재내사부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것도 침향나무가 아니었습니다.
그중 11점에서는 물관 주위로 날개처럼 퍼진 세포 조직이 보였습니다. '라민(Ramin)'이라 불리는 고니스틸루스(Gonystylus) 무리 나무의 특징입니다. 라민은 보르네오 섬을 중심으로 자라는 나무로, 현지에서 침향처럼 유통되기도 하지만 품질을 상·중·하로 나누면 하품으로 취급됩니다.
나머지 4점은 침향나무의 특징도, 라민의 특징도 없었습니다. 이 나무들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겉모습과 향에서도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진짜 침향은 수지가 쌓인 부분과 나무 섬유가 나란히 번갈아 나타나는데, 수입품에는 이런 무늬가 없었습니다. 기름이 번들거릴 만큼 배어 나온 것도 있었고 태웠을 때 향이 상쾌하지 않거나 검은 연기가 나는 것도 있었습니다.
진짜 침향을 가려내는 일은 왜 이름표가 아니라 나무에서 시작해야 할까?
한약재의 효능을 말하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이것이 정말 그 식물이 맞는가'입니다. 침향은 우리나라에서 자라지 않아 나무 자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학명을 둘러싼 논란도 있으며, 눈과 코로 하는 검사만으로는 판정이 어렵습니다.
이 연구는 서류의 이름과 실제 나무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세포 구조라는 객관적인 근거로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지금 현 시점이 아니라 2011년, 당시 수입품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는 점도 함께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논문
김인락, 박병수. (2011).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된 Aquilaria malaccensis의 감별 연구. 대한본초학회지, 26(1), 97–101.


